고통에 답하다

고통에 답하다(9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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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겼다” 하나님은 욥의 옳음을 지지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적 생각으로 욥을 죄인으로 단죄하는 보복 신학적 태도를 책망하셨다.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욥 42:7) 

아울러 욥에게 친구들을 위해 번제를 드려서 그들이 벌을 받지 않게끔 하셨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욥을 인정하시는가? 우리가 발견하는 유일한 근거는 욥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마음을 토로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았다. 욥의 동기나 마음이 늘 합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가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고 더 가까이 나아왔음을 인정해주셨던 것이다. 

존 뉴턴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찾아도 없는 것 같으면, 

멀어졌을 때는 그야말로 얻을 것을 구하지도 못할 만큼 어렵다. 


욥기에서 배우는 확실한 가르침은 성도의 고통에 하나님은 예외가 없으실 만큼 가까이 계시다는 점이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시 34:18),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시 145:14),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심지어 말씀이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계시다. 이것이 고난 속에서 붙들어야할 것이다. 

욥처럼 하나님께 계속 나아가야 한다. 말라버려도 간구해야 한다. 힘들어도 성경을 읽어야 한다. 

흑암이 계속 되리라는 법은 없다. 하나님이 주신 몫을 감당하며 인내할 때 필요한 힘이 임하고, 

하나님의 임재도 경험하는 법이다. 순종하고, 섬기고, 증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시편 42편은 상한 마음으로 성전에서 불안함을 토로하는 찬양이다. 

“내가 너무 낙심이 됩니다. 그러나 주를 기억하기 원합니다.” 이것이 시편기자의 기도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는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다. 

단지 구석에 쪼그려서 나만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부르며, “내 영혼아”라고 외친다.


“왜 살아야 해?”, “어떤 희망도 없다” 이런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우리는 그 때 “인생의 희망을 정말 걸어야 할 분은 하나님이야”라는 말을 하라는 뜻이다. 

내 마음이 내게 하는 말보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내 마음에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로이드 존스는 『영적 침체』라는 책에서 시편 42편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으뜸가는 일은 시편 기자 역시 배웠던 일인데, 

바로 자기 자신을 엄하게 다루는 법이다. ……자아가 말을 걸게 하지 말고 우리가 자아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영적 침체에 빠지면, 자아에게 말을 거는 대신 자아가 말을 걸어오기 쉽다.……(시편)기자는 일어나 말한다. 

“자아야, 잠시 들어 보아라……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고 또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지“ 지속적으로 일깨워 주어야 한다.……자신에게 저항하라. 

다른 이들에게 저항하라. 악마와 온 세상에 저항하라. 그리고 (시편)기자와 입을 모아 말하라. 

“그분은 내 하나님이시니……내가 여전히 찬양하리라”1)


크리스천 정신과 의사 존 화이트는 『거울의 가면들』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러 해 전, 심각한 우울감에 시달리던 시절에는 정신을 놓치 않게 붙들어 주는 것이라곤 

호세아의 예언을 붙들고 벌이는 한 줌 모래만큼이나 건조한 씨름이었다. 

하루하루, 아침마다 꼼꼼하게 주를 달고 본문에 담긴 역사적인 암시들을 점검하기를 몇 주씩 되풀이하면서 

발 밑이 갈수록 단단해지는 걸 서서히 감지하기 시작했다.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안간힘에서 치유가 솟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한 점 의심 없이 깨달았다. 

시련을 겪는 이들에게 한 줌의 집중력이라도 남아 있다면, 

묵상하는 자세로 성경을 읽기보다는 철저하게 귀납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2)


그는 그냥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정도를 넘어섰다. 

이 말씀의 의미, 역사, 하나님의 능력 등을 종합적·귀납적으로 연구하면서, 말씀을 붙들려는 간절함으로 

우울증을 버텨나갔다는 것이다. 욥이 하나님을 기다리듯 그렇게 기도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중요하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력을 되새길 수 있다. 시편이 좋은 이유다. 

그 안에는 자기 형편을 넘는 기도가 있고, 눈물과 회의, 두려움과 슬픔이라는 고통의 총체 안에서 수없는 간구가 있다.3) 

시편은 하나님을 만나는 안식처이다.


1)LIoyd-Jones, Spritual Depression, 20-21. 마틴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복있는 사람 역간)

2)John White, The Masks of Melancholy:A Christian Physician Looks at Depression & Suiside(1982).오디오에서 인용.

3)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45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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