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답하다

고통에 답하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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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답하다(30)


자유의지 신정론의 문제1)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에 악도 선택하게 하셨다고 말한다.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의 남용이 악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을 지으신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대상을 로봇처럼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에 허용된 결과가 악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악은 하나님의 원래적 의도가 변질된 것이다. 이것이 자유의지 신정론이다. 


문제는 이 이론은 인간의 악을 설명할 수 있기는 하지만, 자연으로부터 오는 끔찍한 재앙은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자유의지를 오용한 인간이 자연재앙을 만든다는 점은 자연재앙의 타당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연의 악은 때로 인간의 악과는 차원이 다르게 등장하기 때문에 악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두 번째 문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악을 행할 수 없도록 만들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악의 원인자로 하나님을 올가매어 버린다. 

하지만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는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가지셨지만 악을 행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의 피조물도 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종말에 이를 때 하나님은 악을 소멸하여 영원한 만족감 속에 살게 하실 것이다. 이런 사실을 유추해 볼 때 하나님을 악의 원인자로 몰아가는 방식은 타당성이 부족하다.  


세 번째 문제는 인간의 자유의지때문에 악이 왔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람은 죄의 노예가 된 상태로 자유를 즐기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통해 나온 악의 결과는 하나님이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제하지 않은 채 인간의 선택을 주권적으로 이끄시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계획에 어떠한 인간의 자유의지도 다 들어맞게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태초에 이 사건은 정해져있었지만, 이 사건은 철저하게 사람들이 주도해 갔다. 그런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완성될 뿐 아니라, 사람에게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회복되었다.  


네 번째 문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너무 과대포장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자유를 위해 악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내 자유를 너무 침범하지 마세요. 결과는 자신이 책임지면 되잖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만약  사오정이 “danger” 라고 써있는 약을 “단 거”로 읽고 사오정이 먹으려고 한다면 그것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놔두어야 하는가?(*.*) 성경에 선지서는 항상 하나님의 경고로 가득차 있다. 그 길로 가면 망하기 때문에 두고 두고 훈계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지 신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설명하기에 좋지만, 악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신정론으로 시험에 들기도 했다.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벧전2:16)


<예수다솜교회 박두진 목사>


1)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1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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