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답하다

고통에 답하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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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답하다(67)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시 44:24)



   네번 째 고난의 이유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입니다. 이런 고난은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연신 너무 힘들어서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는, 사실은 받고 싶지 않은 고난입니다. 


  욥기가 결정적입니다. 욥은 서로움의 결정체입니다. 자식들은 한날 한시에 죽습니다. 재산은 순삭되었고, 건강을 잃었습니다. 부인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고 합니다. 고난이 그녀를 배교자처럼 만들었습니다.


   실제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어떤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섭니다. 욥이 잘못을 했다면 고난이 억울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스스로도 하나님 앞에 무슨 잘못이 있는지, 무슨 교훈을 알려 주시려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욥의 위로자로 왔던 친구들도 이 비극의 원인을 찾아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욥의 문제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의로움으로 고난을 순전히 견뎌내며 하나님만 바라는 사람으로 고난 앞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욥이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고난이 온 것이었다면 차라리 욥기를 읽기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욥은 우리에게 하나님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견뎌내는 믿음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팀 켈러는 이런 유형의 고난은 “정직한 기도와 부르짖음, 절실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고된 수고,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야기한 “사랑하는 것들의 재정렬”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고난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정말 사랑해야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질서를 가져옵니다.1)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이런 고난에 있는 이들에 앞서 더 심한 고난 가운데 욥보다 의로운 분으로 우리의 고난의 총합을 위해 고난당하시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불가의 역경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붙들게 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앞서 고난을 통과하셨고, 그 길의 안내자로 돕기위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1)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333-35.

<예수다솜교회 박두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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