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답하다

고통에 답하다(4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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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답하다(44)


사람들이 점을 치는 이유는 고통을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잘 찾아서 행복을 맛보고 싶기도 하고, 자녀가 지금보다 잘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를 알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은 숙명론이 아니다. 점친다고 사람이 행복해지면 다 점을 쳐야 하는데 점처럼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비하고 유기적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의 선택이 몇 퍼센트로 나뉘어 있는지 기계적으로 구분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로 사람이 보기에 부정적이고, 때로 긍정적이지만 어떻게 하나님께서 공의와 사랑을 이루어가는 방식을 사람이 다 측량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지 않은가. 눈 앞에서는 불의해보여도 어떻게 평가하기가 어려운 일이 많은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 능력이 없다. 그런데 종점에 도착해서야 겸손해진다. 인간에게 주신 무한한 자유가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서 결국 하나님을 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한다.


숙명론과 하나님의 주권의 차이는 결국 사람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 것이다. 사랑한다면 자유를 주어야 한다. 동물원이 어릴 때는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동물원만큼 동물에게 가혹한 곳은 없을지 모른다. 나를 가두어 놓는 이론에 나를 가두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십자가를 보라.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행4:27,28)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은 사람의 악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모든 것은 이루어졌고, 인간의 죄는 도리어 용서받았다. 남은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약속대로 인류가 받게 된 것이다.

이 오묘함을 보며 신이 없다 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너무 마음이 높은 것이 아닌가.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9)


<예수다솜교회 박두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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