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답하다

고통에 답하다(23)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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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답하다(23)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내린 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는 사람은 편한 삶을 살려다가 더 어려운 삶을 산다고 말한다. 명품이 필수 아이템이 되고, 스마트폰이 일중독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는 이런 시대에서 행복의 방식으로 집착을 제거하라고 추천한다. 


세속주의의 특징은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면 행복은 온다고 가르친다. 핀셋으로 불행인자만 빼내면 된다는 것이다. 행복감이 호르몬에 의해 조절된다면 그것을 조절하기만하면 된다는 말이다. 지금보다 더 강한 신체를 갖고 싶다면, 생체공학으로 보완하라고 한다. 과학기술로 수명연장과 치료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살면 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심지어 사피엔스에게 종말이 와도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뿐이다. 


이것이 세속주의적 세계관의 한계이다. 이들은 문제를 수정하면 세상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려도 답을 찾아내기만 하면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약물만 주입하면 사람이 행복해지는가? 고단한 삶에 집착만 내려놓으면 편안해지는가? 왜 사람들은 현대사회에 이르러 더 행복을 위해 이상한 중독을 불사하는가? 


세속주의의 약점은 이것이다. 행복을 약속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답해주지 못한다. 고통의 이유를 풀어내기에는 자본주의와 진보적 역사관을 이끄는 사람들의 도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자신들의 시대에 왜 평화가 있는지 대답해줄 수 없을 만큼 과학적 관점은 인간의 삶보다 그냥 과학의 발전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어니스트 베커는 『죽음의 부정』에서 “우리는 인간이 불가능한 것을 바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임시 보호막을 만들 뿐이다. 


하나님을 신화로 만들고, 인간의 역사 속에 행복을 구속시키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았는데, 결국은 부분적이었던 것이다. 코로나-19가 그렇다. 어떤 이에게는 이것은 그냥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다. 사람들이 맞부딪히는 두려움과 절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 자리에서 동일한 고통을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잠30:4)


<예수다솜교회 박두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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