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답하다

고통에 답하다(68)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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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답하다(68).



“순식간에 공포가 나를 에워싸고 그들이 내 품위를 바람 같이 날려 버리니 나의 구원은 구름 같이 지나가 버렸구나”(욥 30:15)



   욥의 한숨은 쓰고, 그 숨안에는 슬품이 가득합니다. 그의 푸념은 그를 향해 어떤 위로도 남기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을 보며 현실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팀 켈러는 고난을 겪을 때 외적인 조건만 아니라 사람의 내면적인 기질에 따라서 고난의 성격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은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입니다. 그는 고난을 외적인 “고난suffering”과 내적인 “환난affliction”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는 사람에 따라 내면적 고통은 5가지 모습을 가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고립입니다. 고난은 사람에게 벽을 만듭니다. 아픈 가족이 있는 사람이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은 고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 바뀌어 갑니다. 잠시 못만났는데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이런 일은 언제든지 닥쳐옵니다.


   둘째는 내면의 파열입니다. 내면의 고통은 자신에게만 몰입하게 만듭니다.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게 만듭니다. 시몬 베유는 횐난은 ‘상실의 고통보다 빛의 부재보다 하나님의 부재를 더 느끼게 하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도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세째는 파멸, 절망, 정죄에 대한 감각입니다. 환란은 수치심을 심고 자신의 삶이 더렵혀졌다고 느끼게 합니다. 고난을 통해 벌을 받는다는 느낌으로 자신의 흠을 봅니다. 한쪽으로는 자신이 희생자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네째는 분노입니다. 사람과 하나님을 겨냥한 분노입니다.  


    다섯째는 유혹에 빠져있는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자신의 타성은 환난때문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태도입니다. 스스로의 행동을 고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환난때문에 이렇게 산다고 핑계를 대면서 혹시 생기는 어려움은 죄값이라고 생각해버립니다. 


    이처럼 고난에 대해 사람의 내면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성격에 따라, 성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맞벌이 부부라도 아버지는 직장일이 안될 때 더 괴로워하고, 어머니는 자녀가 어려울 때 더 괴로워하는 것처럼 말입니다.1)


    주석가 매튜 핸리는 욥의 이 고난을 “환란affiction”이라고 합니다. 슬픔과 고통이 그의 마음을 적막하게 만들었고, 고통이 그를 꿰뚫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적이 되어 자신과 싸우시려는 것처럼 느끼는 욥을 보며 고난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할까요? 


    욥에게 배울 점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 순전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비록 그의 모습 속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태도도 발견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고난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과정에 있을 때는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척 힘듭니다. 그 때 욥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욥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께서 욥보다 더한 고난 속에서 우리를 품으셨기에 우리를 돕기 원한다는 사실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제거하는 분으로만 존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최선을 우리의 계산법으로 제한하지만 않는다면 공포, 품위상실, 구름같은 세상에서도 은혜의 사다리를 늘 오르게 될 것을 믿습니다.



1)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336-40.

<예수다솜교회 박두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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