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묵상


1월 20일 - 3분 묵상

관리자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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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묵상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례29:7)


  우리는 대부분 도시는 세속적인 곳으로 생각합니다. 가왕 조용필은 <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 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모두 도시에서 성공을 꿈꾸고 저마다의 야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뜨거운 눈물을 먹게 된다는 그의 노래는 도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삭막하고 영혼이 마르는 우리의 도시에서 그도 구도자임을 깨닫게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이 옳을까요?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도시를 위해 기도하고, 도시의 평안을 위해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바벨론 제국에 점령당하여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유일신을 믿는 그들에게 바벨론은 지독한 우상의 도시였고, 타락의 명소였습니다. 이런 도시를 향해 하나님은 도시가 잘되도록 기도하고, 도시를 위해 일하라고 말씀합니다. 


  도시를 위한 하나님의 관점은 결코 찬송가 가사처럼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로만 해석할 수 없게 만듭니다. 본향을 향해서는 이 찬양을 해야 하지만 도시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도시가 아름다운 공간이 되도록 우리가 기여해야할 사명지인 것입니다

     

  종교사회학자인 로드니 스타크는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는 “재활력화 운동(revitalization movement)"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노예와 가난한 사람들이 득실거렸던 도시에 자비와 소망을 주고, 신분의 극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귀족과 노예, 이방인과 내국인을 연결하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전염병이 가득할 때 그들은 이웃에게 사랑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철저히 선교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도시를 살아가며 할 일은 도시를 적대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도시를 품고, 도시를 돕고, 도시를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역량으로 도시를 풍요롭게 하고, 도시의 약함을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힘들고 지쳐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번영이 그리스도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도시를 긍휼히 여기심을 우리의 삶을 통해 알려주어야 합니다. 도시는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샬롬의 장소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다솜교회 박두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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