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묵상


1월 19일 - 3분 묵상

관리자
2022-01-19
조회수 24

3분 묵상.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3:4)


  우물가의 여인이 소외된 아웃사이더를 대표한다면, 니고데모는 유대사회의 인사이더를 대표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는 차분하게 자신을 소개하셨지만, 내부자인 니고데모에게는 “너는 거듭나야 하겠다”고 단도직입적으로 격식을 파괴합니다. 


  사실 거듭난다는 것은 이전보다 더 나은 인생이 되어야할 사람에게 필요한 말입니다. 하지만 내부자인 니고데모에게는 거듭남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성공했고, 도덕적으로 우월했고, 종교적 지위와 성품까지 온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한 “거듭남”이 무엇일까요? 이 말씀은 유대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인격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우물가의 여인처럼 똑같이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은 죄를 알고 있는 죄인이고, 니고데모는 죄를 죄로 모르는 죄인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어두운 것은 이처럼 죄를 죄로 알지 못하는 내부자들의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인과 니고데모의 공통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구원을 찾았다는 점입니다. 쾌락이 구원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한 반면, 자신의 성실함과 착함에서 구원을 찾으려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신이 구원자가 되고, 누군가를 멸시하기 좋은 위치가 되어 누군가를 쉽게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을 하는 죄인인 것입니다. 니고데모도 역시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쾌락으로 얼룩진 자신의 삶을 보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선함을 보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한 다음에 자신의 부모님을 모른 척 하는 사람을 본다면  불효자라고 하지 않을까요? 이처럼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하나님을 향해 아무런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본다면 무엇이라고 할까요?


비록 그들이 선하다고 해도 하나님을 없애고 자신의 구원방식을 섬기며 살았다면, 그는 니고데모와 우물가의 여인입니다.


  우리는 늘 가짜 구원자를 섬깁니다. 그러나 가짜 구원자가 나를 버리는 순간을 경험했다면, 우리는 우리를 버리지 않고 도리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버림을 당하신 진정한 구원자 예수님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가짜 구원자를 위해 살아가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분은 주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셨던 이유는 길을 잃은 이를 위한 “목마름”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를 찾아가는 이유는 “진정한 거듭남”을 주고 싶어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웃사이더 이던 인사이더 이건 구원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목마름”을 가지고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하시고 죽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거듭날 것이고, 영원한 생수가 흘러넘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아름다워질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꿈꾸며 즐겁게 십자가를 섬기셨습니다.1)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1)팀 켈러, 『팀 켈러의 인생질문』, 64-71.

<예수다솜교회 박두진 목사>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