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묵상


1월 18일 - 3분 묵상

관리자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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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묵상.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요4:7)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3:4)


  우리 사회는 내부자들과 소외계층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요한복음 3장은 예수님께서 유대사회의 중심인물인 니고데모를, 4장은 유대사회에서는 개같이 여김을 당하고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던 변방의 사마리아 여인을 연이어 만나시는 이야기입니다. 겉보기에는 두 이야기는 다른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의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 세상의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죄를 거론할 때 어떤 사람을 판단하거나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만족하는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입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으며, 누군가를 평가하는 순간 언젠가는 내가 먼지를 털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도덕윤리적인 문제로 인해 우물가를 찾은 여인의 이야기를 먼저 살펴봅시다. 이 여인의 스토리는 사실 우리와 그렇게 멀지 않은  도처에 존재합니다. 그녀는 이 문제로 같은 동족에게까지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를 벗어나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중에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우물가로 갔고, 이 여성은 누구도 물뜨러 나오지 않는 정오에 이 자리를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남성이 여성에게 말을 거는 자체를 남성의 명예를 깍는 행위로 생각하던 시대에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전쟁 통에 나라를 상실하고, 이주한 타국인들과 결혼시키는 제국주의 사회에서 어느날 국제결혼을 한 부모의 자녀로 탄생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는 피를 더럽힌 존재였습니다. 더욱이 사마리아 산에 자신들의 예배당을 만들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종교적 혼합주의가 있는 그들을  유대인들은 더욱 혐오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 여인은 율법을 준수하며 철저한 도덕사회를 지향하는 유대인들에게는 내놓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이혼이 다섯 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한 변방일 뿐 아니라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한 이 여인에게 말씀을 하시기 위해 오늘 찾아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냉철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목마름은 이 물로는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생수”를 마셔야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목마름”을 채우려고 합니다. 연애, 결혼, 직업, 가정, 정치, 정당성을 찾습니다. 문제는 이것들은 “생수”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갈증을 풀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주시려는 “생수”는 우리의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주는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절망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를 마시는 것입니다” 


  오늘 사회를 살면서 갈증을 푼다는 것은 우리에게 대체되어버린 여러 구원방식(결혼, 가정, 직장, 건강 등)으로 인해 잘 와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름 정상에 다다른 이들이 느끼는 엄청난 허무감과 불안함은 잘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상당히 보편적입니다. 사람들은 돈, 섹스, 권력이면 다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나를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위해 맹목적으로 종처럼 살아갑니다. 여유를 위해 목숨을 겁니다. 정상에 있는 연애인들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고,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은 매일 피말리는 전쟁을 치룹니다. 좋은 직장에 취업했으나 더 나은 성취감이 없어서 분노합니다.


  미국의 베스트셀로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케니언 대학 졸업식에서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숭배한다. 무엇을 숭배할 것인지가 선택으로 남을 뿐이다. 모종의 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선택하는 확연한 이유는 다른 숭배 대상은 당신을 산 채로 삼켜 버리기 때문이다. 돈과 재물을 숭배하면 아무리 가져도 만족을 얻지 못한다….몸과 미모와 성적 매력을 숭배해보라. 늘 자신이 못생겨 보이고, 나이들어 노화가 표시 나기 시작하면…천만번을 미리 죽는다” 그는 이 연설을 마치고 2년 후 자살로 인생을 끝내버렸습니다. 그는 그가 한 연설처럼 무엇인가에 삼켜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생수”를 주시려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목마름이 해결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이 그 사람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물어봅니다. “생수가 무엇입니까? 내가 지금 마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안타깝게 여인은 불러올 남편이 없었습니다. 목마름을 채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결혼생활은 이미 다섯 번이나 파탄났기 때문입니다. 


  이 “목마름”이 세상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입니다. 목마름을 바닷물로 채우다가 더 큰 목마름으로 병든 사람들이 사회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말합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유대인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습니까? 사마리아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습니까?” 무슨 의미일까요? “나는 어디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당장 그곳에 달려가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해주셨습니다. “구원을 위해 이곳 저곳으로 달려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십시오 그 때가 올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목마름에 눈물겨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참으로 어떻게 예배할 수 있습니까? 참 메시야가 오시면 이것을 알려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목마름으로 고통하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요 4:26)1)



1)팀 켈러, 『팀 켈러의 인생질문』, 51-63.


<예수다솜교회 박두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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