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10월 11일 - 3분 묵상

관리자
202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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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묵상.



  은혜를 나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은혜의 속성 자체가 흐름을 통해 감사의 형태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서 새로운 은혜를 만들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또 다시 흘러나와서 어디론가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가 가난에 시달렸을 때 그들을 돕기 위해 마게도냐 교회와 고린도 교회에 연보를 요청하여 도왔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을 돕다가 자신들이 고갈될 것이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고 말합니다. 은혜는 새롭게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8:2)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가장 연약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을 믿었기에 더 놀랍게 헌신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부요’라는 것이 사람이 무엇을 가졌느냐,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베푸느냐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요하셨다는 것은 자산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부요함도 많은 재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사랑과 은혜 가운데에 있어야함을 말합니다.1)


  그러므로 성도에게 부요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희생적인 사랑안에서 은혜의 흐름속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흐름은 삶을 새롭게 하고, 은혜에 참여하게 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영적인 삶에 발을 디디게 만듭니다. 은혜를 흐르게 하는 마음은 결국 내 소유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것이고, 부는 축적하고,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앞에서 정의로운 의무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합니다. 은혜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사용할 권한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요함은 오직 은혜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1)존 M.G. 바클레이, 바울의 은혜의 능력, 301.


<예수다솜교회 박두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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